당신도 제주에 가나요
글·사진 음총명(뮤지션·음악치료사)
혼자서 처음 제주에 갔을 때는 동해와 다른 바다의 모양새와 돌담을 보고 제주에 왔음을 실감했다. 제주에 있는 친구들 집을 기지로 하여 유명한 곳들을 많이 다녔고, 누울 곳을 공유해주는 고마운 친구들이 있어서 고향에 온 것 같은 안락함을 느꼈다. 그렇게 육지에서 느껴보지 못한 안락함에 배가 불러있던 세 번째쯤의 여행에서는, 걷다가 발견한 게스트하우스 이름 때문에 기지로 돌아가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외박을 하면서 육지에서는 만나지 못했을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나도 나를 소개했다. 서로가 다시 만날지 아니 만날지부터 생각한 자리가 아니라서 하고 싶은 이야기만 꺼내도 괜찮았다. 이를테면 이름보다는 꿈이라든가 실패한 이야기보다는 찬란한 계획이라든가.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내 인생의 메인 키워드인 ‘음악’을 끄집어내어, 지금 음악치료를 공부하고 있고 앞으로 음악치료사가 될 거라고 소개했다.
누군가 휴게 공간에 놓여 있던 기타를 가져왔다. 다른 이들은 음악치료를 받고 싶다며 내 주변에 작은 원으로 둘러앉았다. 그 시간은 막걸리 파티가 한창이었던 데다가 사실상 치료의 목적으로 그들에게 접근하기에는 곤란한 환경이었다. 그래서 모인 사람들 각각의 이름과 꿈만 얼른 수집하여 그 꿈을 응원하는 노래만을 불러주게 되었다. 그때의 이야기를 지금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나처럼 혼자 제주로 온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 육지로 돌아오자마자 여행자를 위한 노래들을 만들었고 단짝을 꾀어 제주음악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에서는 게스트하우스에서 공짜 잠을 자며 나처럼 일상을 떠나온 사람들만 만났다. 다시 육지로 돌아오면서 섬을 여행하는 사람과 고단한 삶을 여행하는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을 가사로 만들고, 온 마음을 쏟아 싱글 앨범을 발표했다. ‘당신도 제주에 가나요.’ 라고. 노래에서는 왜 떠나왔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런 나는 왜 자꾸 제주일까.
나는 언젠가부터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노래하면 행복해서 평생 음악만 하며 살고 싶었지만, 건강하게 음악인생을 이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직업 중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았고, 음악치료를 일로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음악치료사로 살게 되면서 듣는 것에 대해 과부하 되는 날이 더러 생겨났다. 클라이언트의 말을 계속해서 듣고, 들어주고, 관찰된 모든 정보를 가지고 공부와 분석을 할 뿐만 아니라 이동 중이거나 쉬어야 할 때는 늘 음악을 들었다. 그땐 클라이언트가 선호하거나 치료에 사용하기 위해 고민하며 들었던 음악 외에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이 거의 없었다. 이러한 생활이 반복되면서 진짜 음악과 점점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사람인지라 힘들어졌다. 그리고 그 많은 정보들이 내가 가진 정서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까지 미치면, 도시가 아닌 어딘가로 잠시 떠나있고 싶어졌다. 자연과 가까울수록 좋았고 그럴 때마다 제주였다. 때로는 수고로움에 대한 격려의 의미이기도 했고, 가끔은 도망이어도 괜찮았다.
지금도 가끔은 온전히 쉬기 위해 제주에 간다. 제주에서의 좌표는 멋있거나 맛있는 곳보다는 사람이라서 통과의례처럼 제주 친구들을 다 만나면 육지에 온다.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 여기가 어디고 몇 시인지 알지 못할 만큼 고요할 때, ‘아 나는 제주에 왔구나.’ 하고 느낀다. 슬그머니 어떤 소리들이 그리워지게 되고, 그렇게 사람들과 마주 앉게 되어야 비로소 제주에 있다는 걸 실감한다. 듣는 것의 과부하에서 도망한, 어떤 이의 실컷 듣고 말하는 행위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어떤 말처럼 일상을 여행같이 살아내는 것도 좋으련만, 아직은 일상이 수고롭고 여행은 단 것이 좋은 수준에서 온전히 나를 살고 또, 견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