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대 긴급토론회 ...
“동방신기 위약금은 최소 4000억 원”
8월 14일 오후 2시. 서울 정동에 위치한 프란체스코회관에서는 ‘동방신기 사태를 통해 본 연예 매니지먼트 시스템의 문제와 대안 모색’이라는 주제의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문화연대가 주최한 이날 행사는 ‘동방신기 사태’가 한국 연예기획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했음을 확인하는 첫 사회적 공론의 장이었다는 점에서 뜻 깊었다.
특히 ‘노예계약’으로 대표되는 연예계의 불공정하고 봉건적인 계약구조를 파헤치고, 연예 매니지먼트 시스템의 문제점 및 연예인과 기획사 사이의 새로운 계약 모델을 모색하는 시간이어서 의미를 더했다.
이 자리에는 김대오 기자(당시 노컷뉴스)를 비롯해 김원찬 한국가수협회 사무총장,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탁현민 한양대 겸임교수, 박주민 변호사, 그리고 동방신기 팬클럽 회원 김은아 씨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객석에는 평일 오후인데도 30여 명의 팬들이 참석해 각계의 의견을 진지하게 청취하고, 이 사안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함께 짚었다. 참석자들의 연령대도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했다. 토론회는 약 3시간 동안 진행되었지만, 이들의 눈빛은 처음부터 끝까지 반짝였다.
행사에서는 ▲총 13년의 장기 계약(군 복무 기간은 제외) ▲50만 장 이상 음반 판매 시에만 멤버 당 1000만 원을 받는 불공정한 수익배분(50만 장 이하 판매 시 한 푼도 수익 배분을 받지 못함) ▲계약 위반 시 계약 종료일까지 예상되는 수익의 3배가량 위약금 지불 ▲합의하에서의 계약 해지도 위약금 지불 등 동방신기의 불공정 계약 사항을 놓고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다.
발제자로 나선 이동연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는 “동방신기가 SM과 맺은 계약조건 하에서 물어야 할 위약금은 최소 4000억 원에서 최대 4800억 원에 달한다.”고 말해 참석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교수는 “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권고하는 표준계약서 내용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내용으로 정상급 아이돌 그룹과 최상의 연예매니지먼트사가 맺은 계약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불합리하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이번 사태의 핵심적 문제는 한국 연예매니지먼트 분야의 봉건적 문화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의 지적은 이랬다.
“사생활의 과도한 침해와 일방적인 의사결정 등 연예인과 매니저 간 권위주의적 관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소속사가 연예인을 회사 행사에 무상으로 출연하게 한다거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등, 연예인과 소속사의 ‘봉건적 관계’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인권 문제입니다. 한국의 연예기획사들은 부적절한 계약을 통해 아이돌 스타를 키운 뒤 그들의 인기를 기반으로 상장 주식 가격을 올리는 것에만 혈안이 돼 있습니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대오 기자는 “(동방신기 사태는)이미 예견이 된 사안”이라며 “동방신기가 맺었다는 13년이라는 계약기간에 준비생 기간과 군복무 기간을 합하면 계약기간이 18년 이상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특히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속사와의 계약 문제로 자살을 시도한 아이돌 멤버가 두 명이나 된다.”고 말해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비교적 어린 나이에 데뷔한 연예인들이 활동 도중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위약금 등 소속사와의 문제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해 장기계약에 따른 인권 문제를 도마에 올렸다.
또한 “동방신기가 맺었던 것과 유사한 계약서에 사인하는 청소년이나 부모들은 또 나타날 것”이라며 “제2, 제3의 동방신기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는 “거대 기획사의 도움을 거쳐야만 스타가 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제2의 동방신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대형 연예제작사와 이와 결탁한 미디어를 통해 스타가 되는 시스템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탁 교수는 “동방신기가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 음반산업 시장을 바꿀 수도 있다.”며 “(기획사에 들어가는)상대적으로 손쉬운 선택을 했던 동방신기가 이제는 (기획사-연예인 간)고리를 끊는 데 앞장서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김원찬 한국가수협회 사무총장 역시 “연예 자본의 구조화된 관행과 커넥션을 끊어내지 않고는 제2, 3의 동방신기 사태가 반복될 것”이라며 “관련 법안을 만들어 기획사가 적절한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할 수 없도록 하고, 모든 연예기획사가 공정위에서 만든 표준계약서를 의무적으로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박주민 변호사는 “최근 연예인과 기획사 간의 계약은 연예인이 기획사에 일을 맡기는 ‘위임 계약’에서 기획사가 연예인을 관리하는 ‘고용계약’으로 바뀌었다는 게 다수의 견해”라며 “이 과정에서 불공정 계약에 시달리는 수많은 연예인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의 판례는 연예인들을 소속 기획사에 비해 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계약 자체의 불공정성이 클수록 동방신기의 귀책사유도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토론회에는 팬클럽 회원 김은아 씨가 참석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김 씨는 “데뷔 이후 68개월 동안 동방신기는 앨범 45장을 발매했고,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에서 가진 콘서트가 무려 103회에 달한다. 하지만 1년 중 쉴 수 있는 날은 2주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런 동방신기가 매년 2억 정도의 보수를 받고 가수생활을 했다.”고 분노했다.
김 씨는 시민사회에 “제발 ‘동방신기 사태’를 밥그릇 싸움으로 보지 말고, 인권의 문제로 바라봐 달라.”고 호소하며 “동방신기 팬들은 앞으로 SM엔터테인먼트가 발매하는 모든 앨범 및 화보집, DVD, 음원서비스 등에 대한 불매운동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이날의 토론회는 결국 ‘동방신기 사태’가 대형 엔터테인먼트 자본을 중심으로 한 파행적인 한국 연예계 풍토의 일부였음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연예계의 봉건제적 계약 관계와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 대중문화는 전근대적 시스템에 발목 잡힐 수밖에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공감하는 자리였다.
이러한 사회적 공론의 장이 마련된 지 벌써 2년의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연예계 일부에서는 불공정한 관행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